처음에는 단순한 동물 이야기겠지 하고 펼쳤던 책이었습니다.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이 오래 머물렀습니다. ‘노든’이라는 이름을 가진 코뿔소가 처음 등장했을 땐, 그저 상징적인 캐릭터일 줄 알았어요. 하지만 코끼리들과 함께 살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,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묻는 장면들을 보며, 저도 모르게 자꾸 제 모습이 겹쳐졌습니다.
노든은 익숙한 공간을 떠나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습니다. 그 여정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, 한 생명이 자신만의 삶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었습니다. 가족을 만나고 잃고, 다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그는 계속 무너지고 또 일어섭니다. 이야기의 무대는 동물원이기도, 전쟁터이기도, 길 위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 마음속의 풍경 같았습니다.
1.줄거리 – 살아 있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차이
노든은 가족을 잃은 후 동물원에 갇힙니다. 그곳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친구 앙가부는 잔인하게 죽고, 노든은 무너진 동물원을 탈출합니다. 길 위에서 그는 펭귄 치쿠를 만납니다. 치쿠는 이미 친구를 떠나보낸 상처를 안고도, 남겨진 알 하나를 바다까지 데려가려 애쓰고 있었어요. 결국 치쿠는 알을 맡기고 죽고, 노든이 그것을 이어받습니다.
노든이 바다로 향해 걷는 장면은 단순히 새끼 펭귄을 위한 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. 어쩌면 그는 자신이 살아 있음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됐어요. 펭귄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노든은 언젠가 보내야 할 존재와의 이별도 준비합니다. 그 과정이 무척 조용해서, 오히려 더 깊이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. 이 책이 말하는 건 ‘견딘다’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었습니다.
2. 의미 – 어두운 밤을 건너는 모든 이들에게
『긴긴밤』이 주는 위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. 책을 다 읽고 나면,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. 나를 지켜줬던 사람, 혹은 내가 붙잡아주었던 누군가. 노든이 치쿠에게 받은 따뜻함은 새끼 펭귄에게 이어졌고, 그 펭귄이 훗날 이야기의 마지막을 들려줍니다.
“그는 내게 별 같은 존재였어요.” 이 말이 문장이 아니라 감정처럼 느껴졌습니다. 별은 어두울 때만 보인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면서요. 삶이란 결국 서로의 밤을 건너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. 이 책은 슬픔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. 오히려, 아주 조용하고 단단한 방식으로 ‘사랑’을 말합니다. 화려하지 않지만 묵직하게 남는 울림이 있었습니다.